깨어야 할 미망

살다보면 두고두고 꺼내보는 말들이 있죠. 저에게는 반야심경이 그 중 하나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어디있나"라는 말도 좋지만, 마지막 부분인 "깨어야 할 미망이여"가 지금 저에겐 좀더 와닿네요. 깨어나지 못하는 순간까지, 깨어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싶어서요.

불교는 아니지만, 반야심경의 이 글귀들은 두고두고 꺼내볼만합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끝없이 공하고 또 공하도다
우리가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인이
찰나의 순간에 늙고 병든 모습의 노인으로 우리 앞에 다가설 것이다
그를 뛰는 심장과 충혈 된 눈빛으로 바라보는
스스로도 영원하지 않으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 중에 수년 아니,
몇 시간 뒤에 존재하지 못할 것이 수없이 많으니
대체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할 수 있을까

한 시간 전에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듯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진실로 존재한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체 어느 때 나를 나라고 할 것인가

나라는 관념도 다분히 공한 것이니
모든 것이 공하다 한들 어찌 들리겠는가

내가 있다

네가 있다

어떤 물건이 있고 그것이 탐이 난다 하는 것도 공한 것이다
하지만 올곧게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자가 있으니 그 또한 나이다


내가 없다면 우주가 어디 있는가

들판의 파릇한 풀잎냄새를 맡을 내가 없는데
풀잎은 어디 있는가

나는 있으되 없고 없으되 있으니 그 까닭은 이러하니라
만물은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않고 스스로 변하니
한 순간 전에 우주가 이미 그 우주가 아니다
그때 보이는 그것이 영원하다 믿는 아집이 어리석음이다

모든 것이 찰나찰나 다투는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꽉 찬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고정됨이 없었으니
내가 풀잎을 볼 때 내가 없다면 그때의 풀잎도 없었듯이
세상에 진실로 나 아닌 것은 하나도 없구나

내가 너를 느낄 때 내가 없다면 어찌 네가 있는가
나 없이 너 없고 너 없이 나 없으니
진실로 세상에 나 아닌 것은 없어라

쥬라기 빙하기 신석기에도 나는 있었으니
모습이란 한 순간도 고정됨이 없으므로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지만
나는 있었노라

어린아이 때의 나를 어찌 나라고 할 수 있으며
어른이 된 나는 또 뒷날의 내가 될 수 있으랴
그러나 분명 그 때에도 분명히 나였으니
나는 순간에 살아도 영원한 이치이다

나 없으면 이 광활한 우주가 아무런 소용이 없듯
나와 우주는 이미 상대적이다

세상에 나 아닌 것 없고
나는 또 없으니..

한가지에 매인 정신으로
눈앞에 보이는 그 때가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은 중생이 안타까워라

2천년 전 예수 지금은 이미 다른 존재일 것인데
예수에 목매도 부처에 목매도 어떤 것에 목매도 마찬가지니라
이 모든 우주를 내 마음 하나에 다 가득 담을 수 있으니

우주가 나요 내가 우주요
내가 너요 네가 나니라

인연 따라 모든 것이 마음 안에서 순환되거늘
2천년 전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인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가

세상에 신기할 것이 무에 있으며 기적 아닌 것은 어디 있는가
오병이어가 기적이라고 찬탄할 필요 없이
59조 8천억톤짜리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초속 30km의 각속도로 돌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이 또한 기적이라

울며 기도하지 말고
고요히 눈감고 안으로 들여다 보라
그러면 네 안에 우주가 보일 것이니

이천년전 오병이어의 재주가
신기하지 않으리라

울며 기도하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야

중생아 어찌 네가
내 말을 이해하랴마는
네가 나와 인연 있다면
언젠가 내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네 안을 들여다 봄으로서
너를 찾게 되리라

깨어야 할 미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