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거냐고

24년 새롭게 추가한 프로젝트는 '죽음'에 대한 것이다. 라스트노트는 나의 묘비에 남길 글을 미리 적어보는, 삶에 대한 회고의 기록이자 떠나간 사람들을 위한 기억의 공간이다.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가끔 서로의 묘비명을 업데이트하는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초가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말을 남겨야할까

친구들과의 묘비명 업데이트는 비정기적이다. 삼각지를 지나는 택시안에서. 북악 스카이웨이를 드라이브하다가 잠시 차를 세워둔채로- 평범한 대화 중 불쑥 각자의 묘비명을 떠올리고 혹시 모르니 각자 메모장에 적어두는데, 그러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짧은 순간 현재와 과거, 내가 살고 싶었던 삶, 남게될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뒷목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마음도 급해진다.

내가 없게될 순간을 떠올리고 남길 말을 정하는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마지막 말이든 내 삶을 요약할 한 문장이든 고민하다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데, 내 자신이 기특하다가도 금새 후회나 아쉬움 범벅이 된다. 잠깐 그런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내 곁의 사람들이 달리 보이기까지 한다.

'죽음'을 생각한 순간, 삶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지금까지 꽤 재미난 점들을 찍으며 살아왔다. 심리학 전공에 오프라인 이벤트, 프로모션 기획 업무를 했었고 게임회사 마케팅팀에서 모바일 게임의 글로벌, 한국 마케팅을 경험했다. 그 후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실패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았는데,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혼자 오랜 시간을 버티다보니 하루 하루가 암울했다. 돈은 떨어지고 직원들은 더이상 곁에 두기 어려웠다.

나의 두서없는 열정이 빚어낸 삶을 돌이켜보는 일은 괴로웠다. 끝도없이 후회하고 움츠러들었다. 그동안 업데이트해온 묘비명을 보며 좀더 진지하게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 전에 없이 솔직해져야했다.

죽음을 눈앞에 뒀다면 어떤 수식이나 덧붙임, 체면치레도 필요없을터. 긴 말 필요없이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나. 지금 이 하루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려고 했나. 마지막까지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었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과 지금 이 순간으로 향했고 아이러니하게 나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나의 라스트노트

누군가의 <마지막 노트>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지금 이 순간의 기억>

우리나라의 부고를 떠올려본다. 어릴적 매일 받아보던 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OO대학 교수 부친 △△△, XX기업 대표 모친 OOO 라는 말들로 누군가의 죽음이 기록되어있었다. 그 사람이 어떤 아버지였고, 어떤 어머니였는지. 어떤 친구이고 어떤 딸이었는지 몇줄 더 적혀있는 부고를 나는 본적이 없다.

유명한 사람이나 대단한 성과를 이룬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고 기억될만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들을 떠나보낸 남은 사람들의 삶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특별한 때가 되어야만 찾게되는 추모공원의 한 칸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억을 남겨둘 공간이 필요하다.

Project LASTNOTE

프로젝트 라스트노트는 내 묘비에 남겨질 글 한줄을 미리 생각해보자는게 출발이다. 거기에 더해 먼저 떠난 사람들에게도, 내가 떠난 뒤 남아있을 사람들에게도 메시지 한 줄 남길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단한 각오나 다짐, 촘촘한 계획을 먼저 세우는 대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프로젝트를 꾸려나갈 생각이다. 지금까지 내가 하지 않았던 다른 방식이다. 뭐든 영원할 것처럼 살아온 나의 착각을 깨닫고 잠깐 멈춘 덕에, 프로젝트 라스트노트는 시작되었다.

라스트노트에는 분명 죽음에 대한 생각과 죽음 이후의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이 곳은 어떻게든 살기위해 매일 애쓰는, 살기위해 애썼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산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이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