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느리게, 하지만 가장 빠르게 코딩 배우기 도전
파이썬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후 5년이 흘렀다.
처음 생각한건 2020년이니까, 5년째다. 5년동안 인프런, 유데미, 노마드코더, 패스트캠퍼스의 수업들을 기웃거렸다. 적게는 2-3만원부터 20만원쯤 되는 수업까지- 돌아보면, 수업을 등록하는 것만으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심지어 가장 비싼 수업료를 낸 곳은 어디였는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파이썬으로 데이터 분석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Noom과 관련있는 곳이었다는 것, 주피터나 판다스같은 '단어'들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 '사과', '배' 이런것도.
<000 완전 정복>, <성공 비법>, <최고의 강의>들이 넘쳐난다.
요즘 왜 개발 대신 강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개발자들이 많이 보일까. 내 주변 개발자 4명중 3명이 강의 콘텐츠를 만들거나, 그런류의 플랫폼에서 활동한다. 이유를 심각하게 떠올릴 필요도 없다. 바로 돈이 되기때문. 좀더 보태자면, 한번 만들어두면 큰 노력없이 돈이 쌓이기때문.
개발이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블로그 수익화,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이런류의 컨텐츠를 어쩌다 한번 클릭하거나, 잠시 머물렀다 싶으면 플랫폼들이 곧장 알아채고 내 피드를 관련 컨텐츠로 도배해 버린다.
여기서 잠깐! 얼마전 타일러가 이 점을 학습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유투브 영상을 봤는데 인상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 관심있는 것들만 클릭하고 더 길게 체류해서 내 피드들을 항상 관련 컨텐츠들로만 채워두라는 것.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위해 아이폰의 언어 설정부터,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저장 등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런 컨텐츠들은, '어? 이것만 따라하면 나도?'라는 환상과 다짐을 먹고 산다. 지난 5년간 나 역시 이런 환상과 다짐으로 코딩 수업들을 샀고, 따라하며 배우려고 노력했다. 2주간 챌린지도 해보고, 개발 유투브도 구독하고(자바스크립트 6시간 풀코스 강의, 파이썬 정복 12시간같이 무료로 볼수 있는 컨텐츠들이 정말 많다) 개발자들이 올린 컨텐츠도 틈틈이 보면서 그 세계를 간접체험했다. 요즘 뜨는 개발언어가 뭔지, 빨리 개발을 배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찾아봤다.
이상하다. 배웠는데, 남는게 없다.
분명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교재나 온라인 강의를 보면서 익히기)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HTML, CSS 등등을 조금씩 익혔는데 기억나는게 없다. 모멘텀을 똑같이 만들어보기도하고, 화면 사이즈를 줄이면 배경컬러가 바뀌는 것도 해보고, 파이썬으로 크롤링하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현업의 개발자들이 '그것은 코딩이나 개발이라고 부를수 없다. 이 양반아.'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나도 안다. HTML, CSS 같은건 그저 기본이고 코딩축에는 못낀다는 것을.
그래도 어쩌겠나. 내 머리속에 지금 이순간 떠오르는 것은 그런 경험들 뿐이다.
그럼 어떻게 배워야하나.
나는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프로덕트를 이미 갖고 있다. 돈쓰고 사람써서 만든 '내 것'이지만,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코드 뭉치들을 보면 슬프다. 한줄 한줄 글자 자체는 잘보이지만 이해할수 없으니 멍해진다. 프로덕트를 새롭게 다듬고 싶어도 일정 스펙의 개발자나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으니 답답했다.
뭔가 만들고 싶다는 죄목으로, 개발자에게 구속되어있는 느낌이다.(돈은 분명 내가 쓰고 있는데!) 특히 요즘처럼 여러가지 상황으로 고민이 많을때는 내가 마치 무기징역수가 된것 같다. 그들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아주 조금이라도 탈출하고 싶다.
다행히도 나는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위해 사용할 완성형의 파이썬 코드 뭉치를 들고 있다. 뭐 사실 아예 새로 만드는게 나을수도 있겠지만. (고치는것보다 새로만드는게 쉽다는 이야기를 개발자에게 주워들은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가장 비싼 교재로 스스로 배우는 동시에, 엉망진창이라도 좋으니 직접 뭔가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이미 갖고 있는 프로덕트의 핵심 컨셉은 유지하되 카페24의 스토어에 올라갈 앱을 직접 만들기로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 파이썬 개발자와 작업하면서 몇번이고 뒤집어서 새로만들었던 코드들 @Github
- Django로 되있는 어드민 대시보드
- AWS EC2...? 암튼 서버 계정 (지금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약간 부끄럽지만, 상관없다! 곧 알게될테니)
계획은 이렇다.
1. 2개월간 가장 미니멀한 기본 기능만 살려서 어떻게든 '돌아가게' 만들기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욕심나더라도 일단 제낀다.
- 아직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고, 먹고사는 일도 같이 해야하니 최대 3개월 본다.
- 2개월 넘어가는 순간 도저히 해결못하는 문제들을 파악한다.
- 기존 개발자에게 최소한의 도움을 받아 직접 해결한다.
- 이 기간 동안, 미리 잠재 고객을 확보한다.
- 매일 어떤걸 했는지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긴다.
2. 카페24의 스토어 심사 통과하기
3. 1개월간 세일즈하고 반응보기, 오류 수정하기
4. 잘 모르겠으면 1개월 더 지켜보기
5. 접을지 유지할지 판단하기
잘될지, 안될지 아직 모른다. 카페24의 API 문서들을 아주 가볍게 훑어봤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건, 이렇게 하면 실패해도 뭐라도 남을거라는거다. 블로그에 이 과정을 매일 쓰기로 했으니 3개월이면 90개다! 그리고 최소한 아나콘다, 쥬피터, 사과, 배, if, else 이런 단어보단 많은걸 기억하겠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가면서 배우는게 그 어떤 수업보다 나을거라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무엇보다 궁금하지않은 "파이썬으로 CSV 파일 읽고 쓰기" 챕터를 읽고 따라해보는 대신, 이 글을 쓴 것이 자랑스럽다. 오늘 이 정도로 고백했으니 내일부터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