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ough the wire, to the limit
음악을 들으면 그저 마음이 동해 몸이 들썩거려질 때가 있다. 멜로디나 가사가 이쑤시개가 되어 심장을 찌를 때도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듣는 편인데, 그래도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를 꼽자면 R&B나 Soul, Hip-hop이다.
Kanye West의 College dropout 앨범은 취미로 디제잉을 하던 남자친구가 처음 들려준 것 같다. 막귀인 내가 들어도 신선했다. Izzo를 만든 사람이 낸 앨범이라니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준 것 같기도. 그중에서도 샤카칸의 Through the fire라는 원곡을 샘플링해 랩을 얹은 Through the wire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Netflix의 Kanye West 다큐멘터리 Jeen-Yuhs에 Pharrell과 나오는 장면을 보면 노래에 담긴 사연과 당시의 절박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난 다큐 전체에서 이 장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1. Ye는 자기만의 랩을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2. 당시 Ye가 프로듀서로 소속된 Jay-z의 Roc a fella조차 Ye의 앨범을 내주지 않아 호되게 마음고생.
3. 몇 년을 혼자 고군분투하다 교통사고 나서 얼굴이 박살남
4. 입에 철심 낀 채로 녹음한 게 Through the wire고,
5. 우연히 옆 녹음실에 있던 (당시엔 Ye보다 한참 위에 있던) Pharrell에게 노래를 처음 들려주면서 나름 피칭함.
철심을 뚫고 전해지는 절박함
Ye는 부서진 얼굴에 철심을 박은채로, 랩을 했다. 불길을 뚫고서라도 너한테 가겠다는 샤카칸 노래에 자기 심경을 랩으로 얹었다. 발음도 잘 안 되는 상태라 소리는 어눌했다. Jay-Z사단에서 프로듀서로 인정받았지만, 끝내 자기가 직접 랩을 하고 싶었단다.
아직은 돈이 충분치 않아서 주변의 도움으로 홈비디오같은 뮤직비디오도 간신히 찍었다. 무엇보다 음악을 들고 이곳 저곳을 직접 다니면서 들려주고 홍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가 강하고 그만큼 절박하니 가릴게 뭐 있었을까.
애써서 프로덕트를 만든 후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오만한 내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오만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할지 겁이 난 거다. 내가 너무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과 '나'라는 존재는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괴로웠다. 내가 만든 것과 나의 존재는 분리해야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보여주고, 이야기를 듣고 평가도 받는다. 그렇게 해야 다음이 있다.
어쨌든, 이 노래를 듣는 순간 Pharrell은 진또배기를 만났다 생각한 것 같다. 몸이 먼저 반응해 춤사위를 숨기지 못하고, 조용히 나갔다 와서 귀한 말 몇 마디를 남겨준다.
너무 원하면, 기회는 온다.
Pharrell과의 이 장면이 대단한 기회로 바로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시작점은 되었다고 본다. Kanye West가 The College dropout으로 2004년 Grammy Best Rap Album을 받는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으니, 이 에피소드는 더 묵직하다. Pharrell의 저 진심은 Ye에게 얼마나 큰 지지였을까. 변하지 말고 이 절박함을 계속 유지하라는 Pharrell의 그 말을 Ye는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원하면, 기회는 온다. 단, 원하는 만큼 절박하게 구해야한다.
물론 Ye의 음악 외적 기행(?)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고 비난받을 여지도 많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음악을 향한 절박함과 진심에는 그 누가 돌을 던지랴. 저런 날것의 절박함이 노래와 영상으로 남아, 20년 뒤의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니 너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