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휴지의 법칙

남아있는 휴지의 양이 적어질수록 휴지는 빨리 풀린다는 건데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겁니다. 연구도 있어요.

남아있는 휴지가 적어질수록. 휴지는 빨리 풀린다

두루마리 휴지의 법칙은, 남아있는 휴지의 양이 적어질수록 휴지는 빨리 풀린다는 건데요. 즉,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겁니다. 화장실에 걸려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상상하면 단박에 이해가 됩니다.

처음 두루마리 휴지를 꺼내 걸었을 때와 어느 정도 휴지를 쓰고 난 이후. 같은 힘으로 휴지를 당겼을 때 풀리는 휴지의 양이 다릅니다. 휴지를 이미 많이 사용했다면 같은 힘을 가해도 많은 휴지가 풀리게 되는거죠.

그 선배는 이 법칙에 대해 '나이가 들면서 뇌에 담을 수 있는 기억의 양이 줄면, 같은 시간이라도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설명했는데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두루마리 휴지'에 빗대니 비유도 찰떡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답니다.

미국 듀크대 애드리안 베얀(Adrian Bejan) 교수는 2019년 3월 '유러피안 리뷰(European Review)'의 'Why the Days Seem Shorter as We Get Older'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 시계의 시간(clock time)은 잴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고 24시간이다. 이에 비해 마음 시간(mind clock)은 인지한 이미지가 대뇌피질에 도달한 시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인지한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의 변화를 느낀다. 신체가 노화하면 뇌가 이미지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세월과 함께 신경망이 커지고 복잡해지면 신호 전달 경로가 더 길어지고 활력이 떨어져 신호 흐름 자체가 둔해진다. 이런 신체 변화는 새로운 심상(mental image)을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를 떨어뜨린다.

즉,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clock time과 마음으로 느끼는 mind time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아이들의 눈동자가 어른들보다 빨리 바쁘게 움직이면서 많은 이미지를 처리해서 정보를 습득하는데 비해, 같은 시간 동안 어른이 받는 이미지 수는 어린 사람보다 적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인지한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 변화를 감지하기 때문에, 적은 이미지를 처리하는 어른의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 받아들인 것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뇌 세포 간 연결은 더 복잡해지고 길 찾기가 어려운 게 당연해 보입니다. 이미 뇌 속에 품고 있는 게 많으니 어지간히 중요하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면 차지할 자리가 없을 테고요. 이런 과정은 '퇴화'라기 보단 '적응'이나 '셀프 선별'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겠습니다. 그러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태어나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나의 두루마리 휴지가 주어집니다. 얼마나 감겨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남은 양이 적어질수록 더 쉽게, 더 빨리 풀립니다.

가끔은 외관을 초월해 섹시해 보일 정도로 재치와 말맛이 넘쳐나던 그 선배가 떠오릅니다. 그 선배의 휴지도 이젠 반절 정도 풀렸고 다시 되감기란 없죠. 다만, 풀려나간 만큼 남은 것들은 더 소중할 테고 음미할 여유가 생깁니다. 이젠 한 칸 한 칸이 예사롭지 않다는 거예요. 소중하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휴지를 당겨 사용해야겠습니다.

남은 양이 무한대인 것 같아도 언젠가 '어- 어!!' 하면서 나도 모르게 호로록 풀려버렸다는 걸 아는 순간이 옵니다. 마땅히 준비할 방법도 없고 대책이란 건 더 없습니다. 온전하게 이 하루를 소중하게, 유튜브는 그만 보고. 그렇게 내 시간에, 나의 두루마리 휴지 한 칸 한 칸에 집중하는 수밖에요. 나이가 들어 쥐고 있는 휴지가 줄면, 오히려 소중한 게 뭔지 알게 됩니다.

아 그나저나. 나이 든다는 건 듣기만 해도 무거우니 별로입니다. 그런 표현보단 차라리 든든하게 '먹는다'는게 더 나아 보여요.

참고
물리학 관점으로 본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