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는 경기
어느 순간 승리보다 중요해진 승점
축구가 어느 순간부터 승리만큼 승점을 챙긴다. 이기지 못할것 같으면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처음부터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기 위한 전략을 쓰기도 한다. 언제부터일까. 누가 시작한걸까.
이 질문에 대해 영국 프리미어 리그가 자유로울 순 없다. 축구가 시작된 나라라는 명분에 자본이 뒷받침되면 전 세계의 축구 자원과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들의 서사와 이야기, 빛나는 경기와 선수들이 마케팅을 만나면서 가치는 상승하고 전 세계 축구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가 된다. 더비전이라 불리는 경기들에 라이벌리를 부추기고 긴장감을 더해주면 표는 불티나게 팔리고 맥주는 동이난다. 이런 서사가 한번의 경기로 정해지기엔 호흡이 짧으니 몇달간의 기간을 두고 승점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토트넘이라는 팀도 프리미어 리그에 속해있으므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동안 부임한 감독들의 행보도 대개 비슷했다. 언더독인 그들은 그동안 비난이나 질투보다는 무관심이나 조롱의 영역에 가까웠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토트넘은 확실히 다르다. 특히 어제 그 경기는 "축구에서 승리보다 승점이 중요해?" 라는 질문을 팀 전체가 몸을 던지면서 우리에게 던진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왜 그렇게까지 절박한가. 답은 알면서 묻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분야나 살아온 삶이 달라도 단박에 느껴지는 절박함들을 가끔 이렇게 마주친다. 왜 그렇게 절박하냐는 질문은 '왜 그렇게까지 원하는가'라는 질문과 같을텐데 어차피 그 답이 뭔지는 알고 있고(그저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니까!) 온전히 나의 상황이 아니라면 완벽한 공감은 처음부터 불가능이다.
아깝게 빗나가고 놓친 골 기회에 안타까워하다가 비카리오 골키퍼가 얼굴로 공을 막는 장면에선 울컥했다. 9명인 상황에서 골키퍼가 스위퍼나 센터백까지 하고 라인을 높게 공격적으로 유지하는걸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리그는 아직 초반이고 이번 경기는 수없이 지고 이기고 비길 게임 중 하나인데,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몸을 던지는가. 경기가 많이 남았기때문에 이런 시도를 해서 팀과 팬들의 기강을 잡을려고 했다면,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정말 역대급의 전략가다.
어쨌든 그 순간, 비기기라도 해서 승점 1점 챙기고 다시 1위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적이 있었나. 내가 지금 원한다고 하는것은 간절한 것인가. 마음의 척도를 따지기전에 내 행동은 그러했나. 한두번의 실패때문에 세상을 잃은듯이 자기 연민에 빠져있지는 않았나. 이들의 경기가 끝난 후 경기 내내 그들에게 던진 의문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모든 스포츠 경기가 그러하듯 견디고 버티는 날에 비해 결과가 정해지는 것은 찰나이니, 그 긴장감과 절박함, 집중력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화제가 되는 경기들은 긴장이 더해지고, 일찍부터 언론의 설레발과 예측들이 넘쳐나 혼란스럽다. 이럴때 결정의 순간을 그저 차분하게 기다리고 대비하는 그 당사자의 마음은 짐작조차 어렵다. 결과가 임박한 순간 사람들앞에 나타난 그 모습을, 그 눈빛을 지켜보는 일을 사랑한다.
한번 진다고 모든 것을 잃는 것도, 다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한 것이든, 정신 승리가 오졌다고 하든,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은 게임이었다. 2명의 부상, 2명의 퇴장, 인정되지 않은 골- 1:4라는 스코어만 놓고 보면 더 이상 한 번에 잃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을 잃은 후 이 팀은, 그리고 팬들은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그동안 손흥민 때문에 토트넘 경기를 띄엄띄엄 봤지만, 이제 이 팀이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또다시 이기고, 지고, 비길 이 팀의 수많은 경기들을 기대한다. 축구라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본질을 다시 깨우는 언더독 같은 그들이 좋다. 언더독이어서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더 응원하게 된다. 언더독의 극적인 결말은 확률이 낮고 그렇기에 더 희망을 갖게 한다.
'처음' 지는 것에 대한 감정은 대비가 없었을 것이다. 처음이 아니라 몇번을 겪어도 진다는 것은 준비조차 할 수 없고 익숙해질리 없다. 매주 펼쳐지는 저런 승부의 세계에서 몇 년을 버텨오는 사람의 마음과 다짐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보는 것은 다음 경기가 없는 것처럼 뛰는 모습, 절박한 움직임, 호소하고 달래고 북돋는 그 사람들, 손흥민의 모습이다. 한번 진다고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닌데, 마치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비기기 위한 게임이란 처음부터 없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 게임 보는 것을 좋아했고, 새벽에 혼자 거실에서 눈물을 훔치면서 5:0 패배를 지켜보기도했다. 2002년에는 월드컵 자원봉사자로 공항에서 프랑스 선수단 옆을 같이 걷기도 했다. 너무 좋아했던 앙리(Henry) 옆에서 같이 걸은 것만으로 만족한다. (너무 좋은데 티 못내고 덜덜 떠는 내게 윙크도 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축구에 대단하게 미쳐있는 매니아는 아니다. 그저 화제가 되는 경기들을 라이브로 챙겨보고 마음을 졸이면서 누군가의 승리를 원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경기를 보면서 긴장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는 축구 그 이상으로 지금 나의 삶에 의미와 질문을 던졌다.
졌음에도 이기는 경기. 졌지만 이긴 기분이 드는 경기. 상대에게 졌지만 나에게 이긴 경기.
가끔 이런 말도 안되는 아이러니 때문에 축구는 재밌다. 살다 보면 오늘 같은 경기를 보는 날도 오고, 한국인이 캡틴인 EPL팀도 보고, 오랜만에 눈가가 뜨끈해지니 축구가 다시 좋아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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